하나님의 말씀 VS 나의 생각 일 때, 하나님은 어떻게 하실까?

생각이 다른 것은 각자의 상황과 자라 온 환경의 차이로 인해서 발생하는 아주 일반적인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계획과 나의 생각이 다를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과연 하나님은 이 부분을 어떻게 풀어가실지 말씀을 통해서 살펴보겠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VS 나의 생각 일 때, 하나님은 어떻게 하실까?


우리의 삶 중에 보이는 서로 다름에 대한 행동

사람이 사는 세상은 같은 얼굴이나 같은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이 존재하지만 완전하게 복사된 것처럼 동일하지 않습니다. 각자의 상황에 따라서 조금씩 변하거나 달라지기도 합니다. 쌍둥이들이 그 대표적인 모습일 것입니다. 생김새와 자라온 환경이 같은데도 그들의 생각을 들어보면 개인적인 성향에 따라서 차이를 보일 때가 많이 있습니다. 이처럼 우리의 삶에 다름을 인정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다름을 인정해야 대화가 되고 대화를 통해서 각자의 의견을 알고 타협할 수 있는 부분을 만들어 가는 것이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에서 자주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이부분이 부족하다면 다툼과 자기 주장만 하기에 어떤 발전도 협력도 이끌어 낼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과 우리의 다름을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요?

많은 믿는 사람들은 이 부분에 대한 질문에 이렇게 답하는 분들이 99%는 될 것입니다. 우리는 피조물인데 만드신 분에게 나의 생각을 말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이런 생각은 틀린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에 대한 이해를 어느 정도 갖고 있기에 이렇게 생각하고 답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을 보면, 아브라함 / 모세 / 다윗 / 요나 등 많은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명령 앞에 철저하게 순종했지만 어떤 부분에서는 자신의 생각을 하나님께 언급하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뜻에 반대로 말할 때도 있습니다. 이런 부분이 있다는 것을 성경을 통해서 확인한다면 99%의 생각을 갖고 있는 분들 중에 몇분은 생각을 다르게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의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알아야 하는 것은 반대해도 된다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과연 인간의 생각이 다를 때에 어떻게 행동하시는가에 대한 부분을 알고 우리는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에 대한 부분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본문을 통해서 본격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요나1:1~17의 말씀 내용과 설명

요나의 이야기는 많은 설교를 통해서 들어왔습니다. 특히 요나서 1장은 하나님의 명령, 계획에 반대한 요나가 반대로 다시스로 도망가는 모습을 담고 있습니다.

2절을 보면 “너는 일어나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그것을 향하여 외치라 그 악독이 내 앞에 상달되었음이니라 하시니라.”

하나님의 명령은 바벨론의 수도 니느위로 가서 외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요나의 반응은 반대로 향하여 다시스로 가는 배에 타고 도망갑니다. 3절은 요나의 행동을 아주 잘 보여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요나가 여호와의 얼굴을 피하려고 일어나 다시스로 도망하려 하여 욥바로 내려갔더니 마침 다시스로 가는 배를 만난지라 여호와의 얼굴을 피하여 그들과 함께 다시스로 가려고 배삯을 주고 배에 올랐더라.”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고 도망하는 요나에게 아주 완벽한 타이밍에 니느웨와 정반대 방향에 있는 다시스로 가는 배를 확인하고 배값을 주고 배에 탑니다. 마치 하나님의 명령을 버린 요나의 행동을 지지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배에 탄 요나는 배의 가장 깊은 곳에 내려가서 배가 깨질 위기의 풍랑을 만났는데도 잠을 자고 있습니다. 이 부분을 어떤 사람은 요나의 영적인 상태가 심각한 수준이라고 보여는 대목이라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요나는 하나님이 택하신 선지자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을 수 있는 자입니다. 단순하게 영적인 수준을 논하는 것은 문제가 있습니다. 생리적인 현상으로 멀리로 깊은 잠을 잘 수도 있습니다. 너무 긴장해서 급 피곤하여 잠이 들 수도 있습니다. 모두가 죽을 위기에 자고 있는 요나를 배의 선장이 깨웁니다. 그리고 요나의 하나님께 기도하라고 간정합니다. 그리고 이 풍랑의 원인이 누구에게 있나 제비를 뽑으니 요나가 뽑히게 됩니다. 운이 좋게 도망할 때에 배를 완벽한 시간에 만났지만 문제의 원인이 누구인가를 알기 위한 제비를 뽑을 때에는 운이 없게도 딱 걸립니다. 이 때 요나는 어떤 속임수나 변명을 늘어 놓지 않습니다. 아주 분명하게 말합니다. 그리고 문제해결의 방법은 자신을 바다에 던지는 것이라 알려줍니다. 이런 요나의 행동은 거짓이나 살기 위한 어떤 속임수도 보이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도망한다면 살기 위해서 더 많은 거짓말로 다른 사람들을 속일 것입니다. 그러나 요나는 어떤 거짓도 없었습니다. 분명하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모든 것을 발힙니다. 이정도 말씀을 살펴보았다면 우리는 생각하게 됩니다. 왜? 요나는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하지 않고 불순종했을까? 그 원인을 찾고자 할 것입니다. 그 이유는 바로 2절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요나가 가야하는 니느웨는 자신의 민족인 이스라엘 사람들을 아주 잔인하게 살해한 원수의 나라 앗수르의 수도이기 때문입니다. 요나의 불순종에 어느 정도 정당한 이유가 있어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런 요나를 가만 두지 않으십니다. 자신이 탄 배의 사람들에 의해서 제물로 바다에 던져집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큰 물고기에게 삼키게 됩니다.

여기서 우리가 알아야 하는 것은 하나님의 명령과 그 것을 실행하는 사람의 마음이 다를 때에 논쟁하지 않으십니다. 이유는 무한하신고 전능하신 하나님과 유한하고 죄로 인해서 타락한 인간은 전혀 다른 능력과 지혜를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역사는 하나님의 뜻대로 이끌어집니다. 인간의 가진 노력으로 만들어 지는 것이 아닙니다. 전적으로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필요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절대적이면 절대로 변질되거나 바뀌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유한한 인간을 잘 아십니다. 자기 중심적이고 감정적이며 하나님의 뜻을 온전하게 알지 못하기에 그 뜻을 깨닫도록 도와 주실 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요나을 깊은 죽음 같은 곳, 큰 물고기 뱃속에서 3일을 지내게 하시고 그에게 주어진 사명을 향해서 나아가게 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명령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요나서 4장의 뜨거운 태양 앞에서 고생하는 요나를 위한 박넝쿨을 통해서 명확하게 보여 주십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의 뜻을 돌이키신 적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기도를 통한 소돔과 고모라 멸망의 기준입니다. 또한 모세의 중보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진멸하지 않으신 것입니다. 이 두 사건의 공동점과 하나님의 뜻을 돌이킨 이유는 하나님의 마음, 하나님의 뜻인 용서, 자비, 사랑, 죽음이 아닌 삶과 회복을 기도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께서 다름에 대한 판단과 행동은 타협의 것이 아님을 보여 주십니다. 이유는 우리는 절대로 하나님의 뜻을 온전하게 이해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내 삶에 하나님의 뜻과 다름 앞에 나는 어떻게 해햐 하는가?

결론적으로 인간은 자라온 환경이나 현 상황에 따라서 자신의 생각이나 입장을 정리합니다. 그리고 말하거나 행동합니다. 그래서 사람의 사회적 활동에는 타협이 존재합니다. 싸움이나 다툼이 아니라 조금씩 양보하며 자신의 뜻을 관찰시켜 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는 환경이든 현 상황이든 어떤 것도 영향을 미치지 못합니다. 이유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모든 역사를 자신의 뜻대로 이끌어 가시며 인간의 생사를 정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타협이 아니라 아버지의 마음을 아는 것입니다. 아무리 원수라도 그 생명에 대한 소중함, 귀함을 알고 순종하시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지금 여러분의 삶에 하나님의 뜻과 다름이 있습니까? 순종하기 어려운 것들이 있다면 먼저 하나님의 마음, 자비, 사랑, 은혜를 대입해 보시기 바랍니다. 자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의 죄를 용서하기 위해서 주신 하나님께서는 절대로 이 땅의 어떤 것도 멸망과 죽음으로 치닫기를 원하지 않으십니다. 그런 하나님의 사랑을 안다면 내게 주어진 하나님의 뜻은 내 상황과 형편에 반대일찌라도 사람을 살리는 것이며 구원하는 복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생각을 다 아십니다. 그래서 우리의 반항과 행동에 책임을 묻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부끄럽게 만들어 주십니다. 내 생각의 짧음과 고집과 편견을 깨트려 주십니다. 이것을 알고 하나님의 뜻이라면 비록 내 생각과 다를찌라도 순종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더욱 깨닫는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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