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신 하나님의 일을 우리가 할 수 있는가?(시편 23:1)

하나님과 인간의 차이는 너무도 분명합니다. 무한과 유한 / 창조주와 비조물 / 역사의 주인과 역사의 조연들 등 하늘과 땅 차이를 보이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은 우리에게 당신의 일을 부탁하셨을까?


크신 하나님의 일을 우리가 할 수 있는가?(시편 23:1)


우리의 삶에 담당하고 있는 하나님의 일들!

인간에게 있어 개인의 의지를 갖고 살아가는 것은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그런데 한 개인이 세상에 태어나는 것은 내 의지나 내 노력으로 되는 일이 아닙니다. 즉 누군가의 결정이 있었고 나는 수동적으로 이 땅에 태어난 것입니다. 이부분은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인간의 태어남의 시작이 이렇다면 인간의 죽음은 어떤 모습입니까?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처럼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처럼 인간의 태어남과 죽음은 모두 타의적인 힘에 의해서 결정됩니다. 즉 자신의 힘으로 시작과 끝을 채우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인간의 태어난 이후의 삶과 죽음 전의 삶은 어떤 모습입니까?

이 부분에 있어 우리는 많은 부분에서 내 의지가 작용하고 있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내가 자고, 내가 먹고, 내가 말하고 , 내가 생각하고, 내가 배우고, 내가 움직이고,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더욱 적극적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전반적으로 나의 의지로 살고 있다고 말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은 내 개인적인 결정으로 이루어진 것들이지만 엄밀히 살펴보면 신체의 한계나 필요로 인한 행동들과 주변의 환경으로 인한 나의 대처들이 대부분일 것입니다. 즉 내 스스로 통제하고 자유롭게 하고 있는 것이라 할찌라도 그 근본적인 원인은 나의 의지나 노력으로 해결되지 않는 내왜부적인 이유들로 인해서 결정하고 행동하고 말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주제인 하나님의 일들에 대한 우리의 행동과 말은 어떻습니까?

믿는 사람이라면 하는 예배와 기도를 먼저 살펴보면, 예배는 구약시대에는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절대로 절기나 중요한 날은 꼭 예배하여 거룩한 백성의 본분을 감당해야 했습니다. 그렇지 못하면 죽을 수 있는 상황에 놓이게 됩니다. 기도는 어떻습니까? 기도란 하나님과 대화입니다. 여러가지 이유를 갖고 대화하지만 대체로 우리가 지금하고 있는 기도란 나의 문제와 필요를 해결하기 위해서 하나님께 매달리는 간구의 목적이 대부분입니다. 또한 내게 주신 것들에 대한 감사도 있습니다. 극히 일부이지만 하나님을 더 아는 것만을 위한 기도도 있습니다. 이 모든 것들이 나의 의지로 횟수에 대한 조절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배나 기도를 받으시는 하나님의 의지와 뜻은 절대로 접근할 수 없습니다.

전도와 선교를 통한 복음전파는 어떤 모습일까요?

개인의 의지로 이루어질 수 있다고 사람들은 생각합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전도를 해 본 사람들, 선교에 힘쓰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하나님께서 길을 열어주시고 사람의 마음을 열어주셔야만 가능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실질적으로 나의 의지는 상당히 적은 지분을 갖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구제와 봉사는 어떤 모습일까요?

자발적으로 할 수 있습니다. 계획하고 모여서 그 사역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이 성도들의 헌금으로 이루어지는 것을 안다면 그들의 삶을 풍성하게 채우시고 하나님께 기쁨으로 드리게 하신 성령의 인도하심이 없다면 시작부터 불가능한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나의 노력이나 의지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계획하시고 이끌어 가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작은 나의 삶까지도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하나님께서 맡기신 크고 놀라운 일을 할 수 있는가? 질문해 보면 어떤 답을 얻어야 할까요? 말씀을 통해서 더 살펴보겠습니다.


본문 시편 23편 1절과 배경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이 말씀은 다윗의 시의 한 대목입니다. 그 내용은 어릴 때부터 들었던 말씀에 대한 시작일 수도 있고 그의 노년의 마지막 고백일 수도 있습니다. 다윗은 자라온 환경적인 이유로 인해서 양들을 보호하고 인도하는 목자의 삶을 살아야 했습니다. 그 일은 어릴때부터 감당해야 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목자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잘 알고 있었습니다. 단순하게 먹을 풀을 주고 물을 주는 역할을 넘어 맹수들로부터 생명까지 지켜야 하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이런 다윗이 하나님을 목자라 고백한 것은 자신의 삶이 아무리 나의 의지와 노력으로 나아가는 것처럼 느껴질지라도 목자되신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지키심이 없다면 단 한가지도 내가 살아 숨쉬는 것이 불가능한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이 부분에 대한 다윗의 굳은 믿음은 그의 유년시절이난 젊은 시절 그리고 노년의 죽음 앞에서도 모두 동일한 믿음의 고백으로 작용합니다. 고난가운데도 왕으로 풍성한 삶을 살 때에도 그리고 가장 참담한 죄로 인한 고통의 시대를 살 때에도 다윗은 절대로 이 부분을 놓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시편 23:6에 이렇게 고백하면 23편을 마무리합니다.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

시편 23편은 다윗의 모든 인생을 집약적으로 보여 줍니다. 또한 다윗의 믿음을 더욱 분명하게 드러나게 합니다. 자신의 인생에 하나님의 손길이 미치지 않은 곳은 없다는 것을 다윗은 철저하게 고백하고 믿었고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습니다. 인생의 어느시점 하나도 자신의 의지로 선택했다는 것들 조차도 하나님의 손길이 닫지 않은 곳은 없다고 그는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의 일에 대한 우리의 태도와 결심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하나님의 크신 일은 사실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불가능합니다. 무능하고 죄인인 우리가 어떻게 크고 놀라우신 하나님의 사역을 감당할 수 있습니까?

그런데 이런 마음은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합니다. 우리가 할 수 없지만 우리는 불가능하지만 하나님은 하실 수 있습니다. 우리가 다윗처럼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의 믿음의 고백으로 주어진 자리에서 하루하루 감당하며 살아간다면 우리는 죄 많은 사람으로 불가능한 하나님의 일을 하나님의 은혜로 감당할 수 있습니다. 위대한 믿음의 조상들의 삶이 우리가 범접할 수 없을 정도로 위대하고 큰 이유는 그들의 능력이나 지혜가 아니라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그 일을 믿음으로 감당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나의 나약함이나 부족함에 너무 집착하지 않으셔야 합니다. 오히려 약한 나로 강하게 하시는 하나님을 내 인생의 목자이심을 믿고 의지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하나님의 놀라운 일, 믿음의 삶을 사는 것들, 예배하고 기도하는 것들, 전도하고 선교하는 것들, 구제와 봉사하는 것들을 믿음으로 함께할 자들을 찾고 계십니다. 다윗의 고백이 나의 고백이 되고 하나님의 일이 나의 일이 되어 살아계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의 자녀들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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