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적에서 말하는 세상의 빛과 소금(마태복음 5:13~16)

교회를 다니지 않아도 빛과 소금에 대한 이야기를 잘 알 것입니다. 이유는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이런 삶이 꼭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내게 주어진 자리에서 빛과 소금으로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말씀을 통해서 깨닫고 실천하는 은혜가 있기를 소망합니다.


성경적에서 말하는 세상의 빛과 소금(마태복음 5:1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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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의 현실

제가 살고 있는 캐나다는 몇 개월 전만해도 극심한 대형산불로 인해서 숨을 쉬기 어려울 정도였습니다. 가까운 거리에 있는 도시는 긴급 대피 명령으로 삶의 터전을 버리고 떠나온 사람들로 가득했습니다. 산불로 고속도로는 폐쇄되고 몰려든 피난민으로 인해서 대형마트 4개의 물품 진열대는 텅빈 곳이 많았습니다. 학교는 휴교령을 내리고 많은 사람들이 삶에 큰 시련과 고통을 당했습니다.

또한 일본은 후쿠시마 원전수를 해양으로 방류한 사건도 있었습니다. 단순하게 핵연료봉의 온도를 낮출 때 사용한 물이 아닙니다. 방사능이 노출되고 있는 핵연료봉의 열을 식히는 물을 버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핵발전소에서 사용하고 처리된 물이 아니라 방사능이 가득한 오염된 물을 희석시켜서 버리는 것입니다. 최근에 한국은 여성들의 유방암 발생률이 30% 이상 폭등했다고 합니다. 과거의 사례를 보면 아이를 낳고 모유수유를 한 여성은 유방암 발생이 낮은 것으로 조사되었고 유전적으로 모계에 암이 없다면 큰 문제 없이 암에 대한 걱정이 없었습니다. 한 간에 확인되지 않은 이야기지만 코로나 백신으로 인해서 발생한 것이라 하는 전문가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원인을 추적하기 위해서 추가될 문제라면 일본의 핵발전소에서 발생한 방사능 유출이 원일 수 있다는 생각도 해 봅니다. 전 세계에서 해산물 소비가 최고로 많은 대한민국에서 누구도 방사능으로 오염된 바다에서 잡은 물고기를 먹지 않았다고 할 수 없습니다. 특히 암은 개인을 넘어 환자의 가족과 지역 사회에 심각한 정신적 경제적 고통을 줍니다.

위의 이야기 외에도 경제적 위기와 전쟁의 위기, 정치적 문제,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 등이 우리의 삶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이런 문제들이 즐비한 오늘의 사회를 우리는 어떻게 감당해야 할까요?


마태복음 5:13~16의 말씀을 살펴보고 배경 파악하기

마태복음의 5~7장은 예수님의 산산보훈으로 천국백성의 삶에 대한 아주 중요한 말씀을 기록한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세상을 살고 있는 사람들에 하신 말씀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은 자들에 하신 말씀입니다. 이 것은 마치 세상의 어둠이 가득하지만 단 하나의 빛만으로 아침이 오는 것처럼 또한 바다의 물이 가득하지만 단 몇 %의 소금으로 썩지 않고 정화할 능력을 갖게 하는 것같이 구원받은 자들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신학적인 내용도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의 삶에 대한 부분이 가득하다는 것입니다. 특히 세상에서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 존재인지를 너무 쉽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우리가 아는 소금은 무엇입니까? 그리고 어떤 기능이 있습니까? 또한 빛은 무엇이며 어떤 용도로 사용됩니까?

이 질문에 우리는 수 많은 것들에 대해서 말할 것입니다.

특히 예수님은 빛과 소금을 세상에 필요한 꼭 존재로 표현하셨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실제의 삶에도 없으면 인류는 멸망할 것입니다. 이런 중요한 존재가 바로 예수님을 믿어 구원 받은 우리라는 것을 예수님은 강조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어떤 이론적인 우리의 존재에 대한 증명을 넘어 우리의 삶에 대한 부분도 언급하십니다.

16절을 보면,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아무리 많은 소금을 소유하고 쌓아 놓았다고 해서 소금이 소금의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맛을 내기 위해서는 음식에 넣어야 하고 바다를 정화하기 위해서는 물에 녹아야 하며 부패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그 음식을 감싸고 있어야 합니다. 또한 빛을 작은 공간에 가둔 상태로 어둠을 밝힐 수 없습니다. 빛은 낮은 곳을 두지 않고 높은 곳에 있어야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을 줍니다.

즉 이 말은 우리가 세상의 소금이라면, 우리가 세상의 빛이라면 어디에 있어야 할까요?

한 개인을 넘어 가정에 또한 가정을 넘어 일터 그리고 학교, 작은 공동체에서 빛과 소금의 삶을 감당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살아야 빛과 소금의 삶을 사는 것일까요?

그 해답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마태복음 5장의 8복에 모두 나와 있습니다. 이 부분을 모두 다르지 않겠습니다. 다음에 자세하게 다르겠지만 몇가지만 본다면 7절의 긍휼히 여기는 자의 삶입니다. 8절의 마음이 청결한 자의 삶입니다. 9절의 화평케 하는 자의 삶입니다. 10절의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의 삶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내가 속한 가정이나 공동체나 일터나 학교에서 우리는 긍휼히 여기는 자로 살고 있습니까?

또한 내가 속한 가정이나 공동체 그리고 일터, 학교에서 마음이 청결한 자로 살고 있습니까?

그리고 내가 속한 가정이나 학교, 일터, 공동체에서 화평케 하는 자로 살고 있습니까?

마지막으로 내가 속한 학교, 일터, 공동체, 가정에서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는 자로 살고 있습니까?

지금 당신의 삶의 자리에서 당신은 어떤 빛과 소금의 삶을 살고 있습니까? 돌아보기를 원합니다. 천국백성의 삶은 나 중심적인 삶을 내려놓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타인을 향한 마음이 있어야 하며 공동체를 살리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또한 하나님의 마음을 읽고 그 분이 기뻐하시는 것을 행하는 믿음의 삶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결론, 세상의 빛과 소금의 삶을 다짐하고 실천하기

많은 사람들은 세상에서 선하게 살면 빛과 소금의 삶을 살았다고 착각합니다. 죄송하지만 세상에는 우리보다 더 선하고 정의롭고 바르게 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자신의 모든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고 어렵고 힘든 사람들 속에서 자신의 모든 것을 헌신하며 살기도 합니다. 기독교인이 아닌데 이렇게 산다는 것입니다. 정말로 대단합니다. 그러나 여기서 이들의 삶은 세상에서 높임을 받고 사람들이 정말 존경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에 대한 믿음과 복음에 대한 전함과 행함이 없다면 그져 세상에서 진짜 소금의 유사품이나 진정한 빛의 유사품에 지나지 않습니다.

우리는 다릅니다. 선하고 정의롭고 모든 것을 내어주는 것을 넘어 세상이 줄 수 없는 예수님의 구원의 은혜를 나누고 믿음으로 구원받는 바른 길로 인도하는 일을 감당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서 알고 다짐하고 실천하기를 원합니다. 내게 세상의 빛과 소금의 삶이란 선한 일, 정의를 실천하는 일은 기본이며 예수님을 전하고 구원의 기쁨을 나누어 천국의 자녀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께서 가장 우리에게 원하는 세상의 빛과 소금의 삶입니다. 오늘 하루도 예수님의 말씀을 알고 실철하여 복된 은혜를 누리는 여러분들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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