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 안에서 난 개미인가? 베짱이인가?(데살로니가전서 5:1~11)

세상을 보면 참으로 다양한 사람들이 살고 있습니다. 어떤 이는 개미처럼 열심히 일하고 앞을 준비합니다. 반대로 어떤 이는 베짱이처럼 사는 사람도 있습니다. 말씀을 통해서 나의 현 모습을 돌아보는 은혜가 있기를 소망합니다.


믿음 안에서 난 개미인가? 베짱이인가?(데살로니가전서 5:1~11)


다른 말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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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의 문제를 바라보며

요즘 한국이 먹기 살기 어렵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습니다. 또한 미래에 대한 불확실로 가득하다고 해서 자녀를 낳지 않으려는 부부들이 많다고 합니다. 그래서 인지 많은 사람들은 불확실과 경제적인 압박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일을 2~3개 더 하고 있는 분들도 많아 졌다고 합니다. 당장에 체감되고 눈에 보이는 먹고 사는 문제는 사람의 생각과 행동을 바꾸고 적응하도록 만듭니다. 그래서 인터넷이나 유튜브를 보면 부업이나 돈을 버는 방법에 대한 많은 영상과 모임을 쉽게 찾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현실적인 문제를 가지고 있어도 어떤 변화나 노력을 하지 않고 그냥 오늘만을 위해서 사는 사람도 존재합니다. 미래에 대한 준비보다는 지금 당장의 즐길것들에 더 많은 시간과 노력 그리고 돈과 마음을 투자합니다. 마치 베짱이와 같은 인생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모습은 세상을 사는 일에만 해달 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영적인 믿음의 삶에도 같은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우리의 바쁜 일상과 삶의 어려움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바라보기 보다는 세상의 문제에 더욱 집중하게 합니다. 그래서 신앙적으로 더 침체되고 하나님 보다는 세상의 문제에 더 가까이 합니다. 마치 우리가 세상의 어떤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노력으로 세상의 어떤 것도 쉽게 바꿀 수 없습니다. 이 말은 내 의지로 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포기하라는 것도 아닙니다. 문제를 바라보는 옳바른 관점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세상의 문제의 해결점은 사람에게 없습니다. 이유는 우리는 이 세상의 시간의 흐름 속에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의 문제를 해결할 힘과 의지는 오직 하나님의 손에 존재합니다. 이유는 이 세상을 하나님께서 만드셨고 그의 선하신 뜻대로 이끌어 가시는 역사의 주인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을 향한 집착과 고집을 내려놓고 하나님을 향해서 눈을 들어야 합니다. 우리는 이런 말씀과 찬양을 알고 있습니다.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시편 121:1~2)

어찌보면 영적인 부분의 삶은 세상의 관점과 상당히 다릅니다. 개미같이 일하는 것이 미래를 위한 준비이며 더 낳은 삶에 대한 바른 자세입니다. 그러나 영적인 부분의 삶은 세상의 것에 더 개미같이 일하고 매달리면 하나님을 향한 나의 시선을 사라지고 땅의 것에 대한 집착과 고집으로 가득하여 하나님과 멀어지는 결과를 만들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삶을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한 우화에서 말하는 바르게 사는 것일까요? 더 구체적으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일까요? 말씀을 통해서 더욱 깊이 살펴보겠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1~11의 내용과 배경

데살로니가는 마게도냐의 항구 도시로 로마 제국의 속령 마게도냐의 수도였습니다. 그리고 이 도시는 로마 제국의 동서를 잇는 아주 중요한 거점이었습니다. 바울과 실라는 복음을 전했다는 이유로 빌립보에서 매를 맞고 갇혀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풀려난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를 전하여 태동한 곳이 바로 데살로니가 교회입니다. 바울의 재방문을 위한 노력에도 갈 수 없었지만 디모데를 통해서 살펴보니 외부의 박해에도 교회가 믿음을 지키고 있다는 소식에 바울을 그들의 믿음을 기뻐하면서 더욱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 편지로 보낸 것이 지금의 데살로니가전서입니다. 그중에서 우리가 읽은 말씀은 성도와 교회가 어떻게 현재의 삶을 살아야 하는 것에 대한 바울의 권면을 담고 있습니다.

특히 다시오실 예수님을 향한 믿는 자의 마음과 삶에 태도를 분명하게 언급하고 있습니다. 요즘 같은 모든 것이 마음만 먹으면 얻을 수 있고 갈 수 있는 시대에 우리의 삶은 더 많은 것들에 노출되어 바쁘고 정신없이 살게 됩니다. 일과 쉼 그리고 미래에 대한 준비로 하루 24시간이 적다고 느낄 때도 있습니다. 또한 삶에 대한 불확실성으로 초조와 불안감으로 살아 가는 이들도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우리로 하나님의 뜻과 역사적 흐름을 읽지 못하고 세상의 것에 더욱 개미처럼 집착하게 하며 영적으로 베짱이처럼 다음을 준비하지 못하게 합니다.

추석이 오면서 어떤 변화를 느끼셨습니까?

많은 분들이 가을이 왔다는 것을 더 공감할 것입니다. 그리고 곧 겨울이 닥칠 것도 예상하고 따뜻한 옷이나 월동을 위해서 준비하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는 계절의 변화에 참으로 민감하게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작은 변화를 읽고 준비합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영적인 흐름을 변화에는 무감각하고 나태하고 준비할 수 없는 것일까요?

바울은 믿음의 삶을 계속적으로 유지하기 위한 권면으로 이렇게 말씀하며 시작합니다.

“주의 날이 밤에 도둑 같이 이를 줄을 너희 자신이 자세히 알기 때문이라.”(2절)

“그들이 편안하다, 안전하다 할 그 때에 임신한 여자에게 해산의 고통이 이름과 같이 멸망이 갑자기 그들에게 이르리니 결코 피하지 못하리라.”(4절)

바울은 믿음의 삶의 자세를 계속 유지해야 할 이유로 “주의 날”, “심판의 날”, “예수님의 재림”에 대한 부분을 언급합니다. 그러나 그 때가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며 마치 도둑이 밤에 침입하는 것처럼 어둡고 아무도 모르고 또한 우리에게 편안하다 안전하다 할 때에 임할 것이라 말하고 있습니다. 이 부분에 우리는 주목해야 합니다. 세상의 많은 것들은 어떤 징조를 갖고 있습니다. 날씨, 계절, 전쟁, 화재, 재난, 재해, 사고 등 모든 것이 어떤 징조를 포함해서 일어날 것을 미리 보여 줍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다시 오시는 것은 어떤 징조가 보일찌라도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바울의 시대보다 더 시간이 흐른 오늘 날에도 많은 징조는 보이지만 여전히 오시지 않고 계십니다. 그런 상황은 믿음의 삶을 사는 자들에게 영적인 무감각을 갖게 할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도둑같이 임하실 것을 알지만 이렇게 편안하고 안전한데 그런 일이 일어날 것이라 생각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더욱 세상의 문제에 개미처럼 집중하고 시간과 삶을 드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의 날”은 곧 옵니다. 우리가 알 수 없는 밤, 모두가 편안하고 안전하다고 하고 있는 그 때에 오십니다.

그래서 바울은 데살고니가 교인들에게 그 때를 대비할 방법을 알려 줍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이들과 같이 자지 말고 오직 깨어 정신을 차릴지라”(6절)

“자는 자들은 밤에 자고 취하는 자들은 밤에 취하되”(7절)

“우리는 낫에 속하였으니 정신을 차리고 믿음과 사랑과 호심경을 붙이고 구원을 투구를 쓰자”(8절)

“하나님이 우리를 세우심은 노하심에 이르게 하심이 아니요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게 하심이라”(9절)

“예수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사 우리로 하여금 깨어 있든지 자든지 자기와 함께 살게 하려 하셨느니라”(10절)

바울은 깨어 있어야 한다고 합니다. 잠을 자지 말라고 생활하라는 뜻으로 오헤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것은 불가능한 방법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깨어 있으라는 것은 믿음과 사랑으로 구원을 입으라는 것입니다. 즉 나의 믿음, 나의 사랑, 나의 구원을 말하는 것이라 볼 수 있지만 9~10절은 이렇게 말씀하심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우리를 구원하심이며 예수님은 그 구원을 자신의 죽음으로 완성하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깨어 있으라는 것은 세상을 향한 집착과 고집을 내려놓고 하나님을 바라 보라는 것이며 믿음과 사랑 그리고 구원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만 가능한 것임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결론에 도달해야 할까요?


결론과 나는 세상의 삶 VS 믿음의 삶, 어떤 부분에서 개미인가? 베짱이 인가?

결론부터 말하면 우리의 세상의 삶은 개미처럼 성실하게 살아야 합니다. 그러나 영적인 삶, 믿음의 삶을 베짱이처럼 산다면 그 끝은 겨울을 대비하지 못한 베짱이와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세상에서 아무리 높고 많은 덕울 쌓고 의로운 삶을 살았다고 해도 영적인 삶은 하나님과 멀어진 후일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세상 그리고 믿음에 개미처럼 산다면 우리는 주의 날에 두려움과 걱정을 내려놓고 기쁨으로 주님을 맞이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 때는 아무도 모릅니다. 이미 징조들은 수 천년동안 있었지만 아무도 알 수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준비할 수 없는 것이 아닙니다. 깨어 정신을 차리고 예수님과 함께 하는 삶을 산다면 우리는 세상과 믿음의 삶을 승리할 수 있습니다. 또한 그 삶을 통해서 11절의 말씀처럼 믿음의 형제자매들에게 아름답고 선한 영향력을 나누며 살아 갈 수 있습니다.

믿음의 삶은 세상의 것들에 함몰되지 않고 나를 도우시는 하나님을 향해서 나의 시선을 고정하는 것이며 날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예수님을 더우 가까이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믿음의 삶을 개미처럼 감당하고 세상의 삶도 개미처럼 감당해서 주님 오실 때를 잘 준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 삶은 놀랍게도 나를 넘어 내 가족을 추운 겨울인 고난의 때를 이기게 할 것이며, 모두가 안전하다, 편안하다 착각하는 시대에 구원의 은혜를 누리게 할 것입니다. 또한 나의 이웃과 친척까지도 주님의 때에 구원의 은혜를 누릴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결과를 얻게 될 것입니다.

오늘 하루 믿음의 삶에 충실하고 세상의 삶에도 충실하여 하나님의 기쁨, 예수님을 닮은 참 제자의 삶을 사는 우리가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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